여유롭고 행복한 하루

시 소설 행간 모음 148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

간격 / 박인걸

간격 / 박인걸 달과 해의 거리가 멀 듯 사람 사이에도 먼 거리가 있지만 별들이 모여 반짝이듯 가까워 행복한 사이도 있다. 해는 뜨거워 달아오르고 달은 차가워 시리니 둘은 만나면 불행하지만 별들은 서로 껴안을 때 즐겁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임계 거리가 좋다는데 그대와 나의 거리는 어디쯤일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아득하다 좁힐 수 없는 간격이라면 바라만 보는 것만도 행복하니 언제나 그 자리에서 도망하지 말아 주었으면 ###

마중물과 마중불 / 하청호

마중물과 마중불 / 하청호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

경칩 / 김명배

오늘 절기로 경칩... 여기 저기서 꽃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이제 봄의 시작인가 경칩 김명배 어디를 짚어도 맥박이 온다. 살아 있는 땅 나무를 구르면 하늘을 메우는 숨방울, 들을 구르면 눈 높이까지 솟는 공깃돌 위로 날아 오르는 숨방울, 아지랑이는 아직 바램보다 키가 작지만 살아 있는 땅, 어디를 짚어도 체온이 온다, 맥박이 온다. ###

비스듬히 / 정현종

일요일 아침에 명상하는 시입니다... 비스듬히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 #### 서로 기대어 사는 게 인생.... '비스듬히' 란 부사가 사람 인(人)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에 완전한 수직이나 수평은 개념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반듯한 것도 조금씩은 기울러져 있다. 그것을 시인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조금씩이나마 기울어져 있어 다른 것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해석한다. 시인의 말이다... "우선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인간관계에..

별은 너에게로 / 박노해

별은 너에게로 박노해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전에 출발한 빛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

<시 감상>나무의 수사학 /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 손택수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 손택수 시인의 「나무의 수사학1」을 읽고 있으면 이 도시적인 삶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삶의 방식을 궁구하게 합니다. 시골 자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