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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설 행간 모음

시 암송 <98>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전승기 2026. 3. 26. 22:40

제주도 성산일출봉. 260315


정이 메말라 인간성을 잃어 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의 참여시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나아가려는
기다림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시.


시 암송 ~~  " 아흔 여덟번째 "
정호승 님의  " 슬픔이 기쁨에게 "
    (창작과 비평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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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1950 ~   )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느낌 한마디 ■

♤주제 :  이기적인 삶에 대한 반성, 더불어 살아
가는 삶의 가치 추구

♤ 내용
이 시는 추상적인 개념인 슬픔과 기쁨을 의인화하여
소외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노래한 시다.

1~6행 : 슬픔을 소중한 것으로 인식하며 기쁨에게
   슬픔의 의미를 알려주고자 함
7~13행 :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참다운 사랑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함
14~19행 :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과 화합이 이루어진 삶을 추구함

^슬픔 : 소외된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타적인  
    존재
^기쁨 : 소외된 이들에게 무관심한 이기적인 존재
^기다림 : 이웃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 소외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시간
^함박눈 :  약자에게는 고통과 슬픔,  강자에게는
    행복을 주는 존재
^봄눈 : 약자를 감싸는 존재

♤ 이 시의 화자는 슬픔이고 청자는 기쁨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이 슬픔이 기쁨에게 이다.
일반적으로 슬픔과 기쁨 중에서 긍정적은 의미를
지닌 것이 기쁨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슬픔이 긍정적인 시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시의 핵심은 슬픔이 부정적인 시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기쁨”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이기적인
존재이며, 이는 “너”로 지칭되는 우리 동시대인
모두를 상징하고 있다.

반면에 “슬픔”은 남의 아픔을 보듬을 줄 알고,
소외된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아름다운 존재이다.
할머니의 귤 값을 깎고, 동사자의 죽음에도 무관심한
우리들은 약자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우리에게 시적 화자는 사회적 약자를 멸시의
시선이 아닌 자신과 평등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사랑이 절실한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다림의 자세를 주겠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행복에 취해서 자신만의 안일을 위해
남의 아픔에 무관심하거나 그 아픔을 돌볼 줄 모르는
이기적인 세태를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너와 함께
걷겠다”고 하며 대결의 구도가 아닌 화합과 조화의
삶을 지향한다.
이는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너”에게 알게
하면서, 슬픔이 새로운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이 시는 슬픔과 감정이 교차한 가운데 인간의
무관심과 불평등 그리고 공감의 중요성을 노래한
작품으로 시는 기쁨 속에 숨겨진  무심함을 폭로
하고 슬픔의 성찰을 요구한다.

또한 이 시는 단순한 감정의 노래를 넘어 현대
사회의 이기적인 삶을 반성하고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깊이있게 성찰하게 한다.
슬픔의 평등함과 기다림의 인내 그리고 기쁨과
화해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공감의
미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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