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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동궁과 월지 야경

전승기 2022. 10. 22. 22:03

동궁과 월지 야경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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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야경 명소

동궁과 월지를 찾았다.

경주에 올때마다 들르기에

기대감과 신비감은 느슨해졋지만

은은한 조명에 넋을 빼앗기곤한다.

 

 

 

동궁과 월지(사적 18호)는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4년(문무왕 14)에

건립하였다고 하지만,『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안압지가 건립된 시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뒤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이 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며,

이 곳을 기러기 '안'자와 오리'압'자를 써서 '안압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후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이 곳이 본래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 되어 '안압지'라는 이름은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寶相華)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매일 밤이면 경주 관광객들이 모두 오다시피

하기에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방불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