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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낭만적 사랑의 설화를 간직한 월정교

전승기 2022. 10. 22. 22:07

밤이 예쁜 다리....월정교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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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신라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있는

경주는 '거리 자체가 박물관'이란 수식어에

맞춤한 도시다.

 

산처럼 솟은 거대한 왕릉과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사찰들, 곳곳에 산재한 석탑과 불상,

여기에 화랑도와 풍류정신같은 무형의 자산까지.

 

근사하게 복원된 월정교를 둘러본다.

 

 

 

경주시 교동에 자리한 월정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다리.

역사의 비바람 속에 조선시대에 유실돼

사라졌지만, 신라 왕경 8대 핵심유적 복원

정비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새롭게 복원된 월정교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18년 봄이다.


 

<삼국사기>엔 월정교가 경덕왕 19년(76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다리는 당시 서라벌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고 있었다.

 

 

 

1984년과 1986년 2번에 걸쳐 진행된 자료 수집과

발굴 조사를 통해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가 현재

위치에 있었음이 확인된 바 있고, 이후 오랜 작업을

통해 길이 66.15m·폭 13m·높이 6m의 교량 복원이

이뤄졌다.

월정교는 국내에서 가장 큰 목조 교량이기도 하다.

 

 

 

월정교에서 바라보는 주위 풍광은 아름답다.

건너편 교촌마을의 한옥 기와가 따사로운

햇볕 아래 빛났고, 고목을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가 한밤의 고요함을 깨고 있었다.

 

 

 

연인이나 부부라면 낮에 보는 월정교보다

조명으로 화려하게 장식되는 밤의 월정교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고전적 건축물과 현대적 빛이 만들어내는

낭만적인 하모니 곁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사진 한 장을 남겨도 좋을 테고....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전설이나 민담을

볼라치면 '다리'는 이승과 저승, 인간계와

선계(仙界), 피안(彼岸)과 차안(此岸)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한 그 어떤 것'이었다.

다리 한쪽 편에 고통과 번뇌가 가득하다면,

반대편엔 해탈과 영원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다수다.

그렇기에 '다리를 건너간다'는 문장엔 단순히

물질적 이동만이 아닌 정신적 변이의 의미까지

담겨있는 것이 아닐지.

 

 

 

역사학자에 따라 의견이 갈리기는 하지만,

월정교엔 금기된 사랑의 장벽을 '건너가고자

했던' 승려의 낭만적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원효와

요석공주의 러브 스토리다.

 

 

 

원효가 누구인가.

청년 시절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길.

어느 날 동굴에서 잠을 청했고, 갈증 탓에 깨어나

물 한 잔을 달게 마셨다. 이튿날 그 물이 사람의

머리뼈에 고인 썩은 물임을 알고는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의

궁극적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

 

 

 

이후 그는 머리칼도 깎지 않고 거리를 떠돌았다.

또한 "배우고자 한다면 스승이 누구인지를 가릴

필요가 없다"며 파계(破戒)도 불사했다.

하지만 대중은 그에게 열광한다.

 

<삼국유사>는 원효의 행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원효가 천촌만락(千村萬落)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고 음영하여 돌아오니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무리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덕을 알게 되었다."

도그마와 경직된 율법이 지배하던 고대에 근대적

방식의 해탈을 꿈꾸었던 전위적 승려 원효.

그는 요석공주와의 사랑을 위해 다리 위에서

강으로 몸을 던졌다.


젖은 옷을 말린다는 이유를 들어 요석궁에서

공주와 몸을 섞었고, 그로 인해 태어난 인물이

바로 신라 유학계의 거두(巨頭) 설총이다.

 

 

 

이 설화가 아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원효의 꿈에 기반한 것이건, 딸이 현자(顯者)와

어울리기를 원했던 왕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1300년이 흐른 지금 전하는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신라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재현한 월정교를 거닐며, 드라마틱하고

흥미로운 고대의 사랑 이야기에 매혹되면 될 일이다.

그게 '서라벌의 보물'을 만나는 보통 여행자의 즐거움 아닐까?

 

 

 

<경북매일 기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