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문화 답사
공주 송산리 고분~무령왕능~공주박물관
일시 : 2018. 5. 3.(목)
직원 연수의 날....
공주 백재 문화권 답사에 나섰다.
모처럼 맑고 청아한 봄날
내 나라 답사라는 호사를 누렸다.
<공주의 역사>
공주시는 64년간(475~538년) 백제의 수도였으며,
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 등 5대 왕이 기거하던 지역이다.
국립공원 계룡산이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마곡사,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 4대 사찰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통일신라시대 신문왕때인 686년에는
지금의 충청남도격인 웅천주의 수부(지금의 도청)가 있었고,
고려 때에 웅주라는 지명이 지금의 공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 이후 충청지역에서 문화와 행정의 중심지였고,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의 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옮길 정도로 번성하였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1932년까지 23년 동안
대전으로 이전하기 이전까지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였던 곳이다.
<공주의 문화재>
공주는 역사의 도시인만큼 많은 수의 문화재들이 있다.
그 중에서 백제와 관련된 문화재가 많고,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 중 국보는 무령왕릉 출토
금제관식, 지석, 석수 등 모두 16개가 있고,
보물은 18개, 사적은 9개가 등록되어 있다.
이외에 도지정문화재로 66개가 있고,
문화재자료 및 기타로 92개가 등록되어 있는 상태이다.
모두 합치면 201개로 다른 지역보다 많은 수의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송산리 고분 군>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가 문주왕(475~477),
삼근왕(477~478), 동성왕(479~501), 무령왕(501~523),
성왕(523~554)까지 64년간 도읍지로 삼았던 곳인
웅진(공주)에 조성된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해발 130m의 송산(宋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송산 서쪽으로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동쪽으로는 공산성이 보인다.
송산리 고분군에는 벽돌무덤과 할석·괴석으로 만든
돌방무덤 2가지 유형이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왕릉의 분포를 보면
계곡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
동쪽에는 1~4호분이 있으며, 1~5호분은
궁륭으로 된 천장식 돌방무덤인데,
1~4호분은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직후부터
6세기 초반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터널형 천장의 벽돌무덤으로서
백제시대의 벽돌무덤으로는 이 두개만이 남아 있다.
무령왕릉은 웅진 시기 백제왕들의 무덤이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 있습니다.
정지산 유적지를 향한다.
공산성 누각이 어렴풋이 보인다,
정지산 유적지로 가는 길은 걷기 좋은 호젓한 산책로다.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사대강 사업으로 곳곳에 보를 세우는 바람에
물 흐름이 약해지면서 강 바닥에 침전물이
많이 쌓여 강 오염이 심해졌다고 한다.
<서혈사지 석불좌상>
공주 서혈사지 터에서 발굴(1963년)
무령왕은 백제 25대 임금으로 ‘삼국사기’에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 혹은 융이라 했으며
키가 8척이고 눈매가 그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 민심이 따랐다”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무령왕은 462년에 일본(왜)‘가카라시마’라는
섬에서 태어났는데, 왜 백제왕이 일본에서 태어났을까요?
무령왕의 아버지인 곤지가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갔을 때,
태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카라시마에서는 백제에서 온 어떤 여인이
가카라시마에 정박하여 동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오비야’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무령왕은 전대왕이었던 동성왕이 백가라는
귀족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계략으로 죽임을
당해 왕에오르게 된다.
왕에 즉위하자마자 동성왕을 죽인 백가를 무찌르며
왕권을 강화하고, 왕족을 당시 지방통치의
중심지였던 담로에 파견하여 지방통제력도 강화했다.
백제 내부적으로 왕권강화를 이룬 무령왕은
대외적으로 고구려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만큼 군사력도 증강하였다.
그래서 중국 남조의 양나라에서‘영동장군’이란 호칭도받게 되었다.
무령왕은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많은 일들을 했다.
가뭄이 나면 창고를 열어서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게 하고,
홍수에 대비해 제방을 쌓아 많은 논을 만들어,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이 다시 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또 학문과 종교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중국 남조에서 유학과 도교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이를 잘 다듬어서 일본에도 전해주었다.
이렇게 무령왕은 백제의 수도를 서울(한성)에서
공주(웅진)로 옮긴지 30년만에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국력을 신장시켜서, 백제가 다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왕이다.
무령왕은 523년에 62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다음에 왕에 오른 분이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수도를 옮겨 백제를 부흥시킨 성왕이다.
<백제의 장례>
백제 사람들이 죽으면 누구나 묻혔다.
무덤 모양이나 크기 등은 가지각색이었는데,
불교를 믿기 시작하면서는 화장을 많이 해서
뼈단지(납골 항아리)도 많이 사용하였다.
백제의 무덤은 도읍이 바뀔때마다 만드는
방법, 모양과 크기 등이 모두 달랐다.
또 중앙과 지방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무덤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한성시기의 서울 부근에는 돌무지 무덤이라는
커다란 무덤이 만들어 사용하였고,
지방에서는 널무덤이나 돌덧널무덤을
점차로 돌방무덤을 만들었다.
같은 시기 영산강유역에서는 커다란 독무덤을 사용했다.
웅진 시기에는 왕족이나 귀족 모두 돌방무덤을 사용하였다.
무령왕릉도 돌이 아닌 벽돌을 사용한 돌방무덤이다.
사비시기에도 돌방무덤을 가장 많이 사용했는데,
형태가 육각형이나 사각형으로 웅진시기의
돌방무덤과는 달랐고, 크기도 작아졌다.
또 이때부터 뼈단지를 널리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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