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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설 행간 모음

갈대/ 신경림

전승기 2016. 9. 19. 16:37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해설>

이 시는 1956년 [문학예술]에 발표한 글이다.

이 시는 신경림의 초기 경향을 대표하는 시로,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생명 인식을 보여준 작품이다.

다시 말해, 삶의 근원적인 비애를 '갈대'의 울음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갈대'가 연약한 인간 존재를 상징하는 것임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갈대는 '울고 있고', '흔들리고 있고',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조용한 울음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

'사는 것 자체가 조용한 울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갈대의 존재는 내부적이고 근원적인 고통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갈대의 '울음과 흔들림'은 외부적 원인이 아닌, 내재적 원인으로 인한 것이며,

갈대의 '울음'은 사회적 갈등의 소산이 아니라, 개인의 존재론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는 의미로,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극적 깨달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시는 존재의 실상을 철학적 깊이로 명상한 시로 볼 수 있다.

어떤 존재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외부에서 오는가? 아니면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이 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후자를 말해주고 있다.

갈대로 표상되고 있는 존재의 실상은 이렇듯 허무와 비애와 고독을 근본적으로 동반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삶이란 것도 단독자로서의 본연적 비애일 뿐이다.

그것은 존재 자체이며, 인간에게서 고독과 비애는 바로 '실존'이라는 것이다.

삶에서의 모든 슬픔과 고뇌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시인은 사람들을  '갈대'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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