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 다큐멘터리 영화
중증 장애인인 동생을 가진 둘째 언니 이야기
연세대 4학년 때 자퇴를 하고
17년 동안 장애인 시설에 살던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한 집에 살았다.
스티커사진 찍기가 취미이고, 히딩크 감독의 광팬이며, 노래와 춤을 즐기는 동생이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어른이 되면’이 아니라 지금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한 인간이.
동생의 자립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자 유튜버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장혜영씨 이야기
-17년 만에 다시 함께 사는 거죠. 어린 시절 동생은 어떤 존재였나요?
“저의 전부였죠. 저의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 공장에 다니던 아버지는 돈을 버느라 늘 바빴고, 전생의 업보로 딸이 그렇게 됐다고 믿던 어머니는 기적으로 동생을 치료 하겠다면서 종교(불교) 활동에 열심이었어요. 큰 언니와 달리 저는 막내를 돌보는 착한 둘째 언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죠. 게다가 저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꼬맹이였기 때문에 엄마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혜영이 아니라 ‘혜정이 언니’로 산 거죠.”
-혜정의 언니로서 삶이란 뭐였나요?
“예를 들면, 장래 희망을 쓰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정신과 의사’. 왜냐면 동생을 낫게 해주고 싶어서.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 놀자고 해도 당연히 ‘안돼’ 했고요. 동생을 돌봐야 하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늘 동생이었죠.”
-늘 함께했던 동생을 시설에 보냈을 때도 충격이었겠네요.
“우리 집보다 더 전문적으로 잘 돌봐줄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됐다는 부모님의 통보였죠. 엄청 울었어요. 악몽도 많이 꿨죠. 시설에서 동생이 (말을 하지 않고) 웅얼거린다고 괴롭히는 꿈이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있어서 다 알아 듣는데, 그러니 내가 동생을 더 잘 돌볼 수 있는데…”
-동생과 다시 함께 살아보니 어땠나요.
“흠…! 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독이 되는 게 없다고 느꼈어요. (웃음) 이사한 집에서 처음 자고 일어났는데, 막막하더라고요. 아침밥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씻는 것부터 해야 하나. 우리는 그런 일상생활을 하나하나 ‘발명’해 나가야 했죠.”
-다큐멘터리에 평범한 일상이 나오는데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대개 장애인이 등장하는 서사는 ‘함께 살기 너무 어려운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강조하죠. 읍소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 ‘그런 안타까운 존재이니 제발 답을 주세요’ 하는 식이죠. 그런데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건 무슨 대단한 이타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단지 생활양식을 조금만 바꾸면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사실 이건 노후 보장 보험이기도 해요.”
-유튜브에 동생과 보낸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기도 했죠?
“유튜브 콘텐츠에서 중요한 건 아이덴티티와 퍼스낼리티예요. 장애인권 얘기를 다루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 미루다가, 동생과 일본 여행 다녀온 게 계기가 됐어요.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여행을 쭉 영상으로 찍었는데 다녀와서 보니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 영상에는 내 동생이 장애가 있다거나 하는 설명이 전혀 없어요. 그저 자매가 여행한 영상이었죠. 이걸 유튜브에 올리면 어떨까 했어요.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상에는 늘 장애인이란 꼬리표를 붙이잖아요. 비장애인의 영상을 디폴트(기본)라고 생각하니까.”
-제목을 왜 ‘어른이 되면’이라고 지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늘 혜정한테는 ‘어른이 되면’이라는 단서를 붙였어요. 혜정한테 뭘 하면 안 된다고 할 때마다요. 나중에는 혜정이 혼자서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중얼거리곤 하더라고요,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발달장애인한테는 그런 영원한 미성숙의 저주가 있는 거죠. 이미 서른이 되어 어른이 되고도 남을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 혜정한테 무수히 ‘어른이 되면’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이걸 보고 뜨끔하면 좋겠어요. 장애인 영화라고 하면 보통 성장기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전혀 그런 얘기가 아니거든요. 그걸 역설적으로 제목에 담은 거죠. 장애인을 누가 어른으로 만들지 않고 있는지 생각해보기를 바라요.”
우리는 아마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거다.
‘장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정말 행운이다.
’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회가 희망이 있을까.
이제야 알았다.
그녀의 다큐멘터리가 질문의 연속인 이유를.
그 무수한 질문 중 하나라도 답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의도였다.
왜 지금까지 살면서 스티커 사진을 찍는 장애인을 한번도 보지 못했는가.
시상식에서 흥에 겨워 무대로 나가 가수와 함께 춤을 추는 장애인을 보지 못했는가.
왜 장애인은 시설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가.
장애인 차별이 부당하다고만 생각했지, 왜 차별하지 않을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는가.
동생과 함께 사는 일상을 담은 지극히 평범한 이 다큐멘터리가 낯선 이유다.
<한국일보 -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생각 꾸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년 애마 소나타를 떠나 보내다. (0) | 2019.02.07 |
---|---|
미래 유망직업&사라질 직업 (0) | 2019.01.29 |
곱다고 가꾸면 꽃 아닌게 없다 (0) | 2018.12.26 |
전주역 첫마중길 조명 (0) | 2018.12.23 |
부안 모항 해변 (0) | 2018.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