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유적지
2025. 5. 14.
♤코스 : 로마~《폼페이》~소렌토~포지타노
~아말피~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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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의 시작
인천공항 출발 : 5월 13일 12: 30
로마 도착 : 5월 13일 19:15 (7시간 늦음)
소요시간 : 13시간
♤이동시간
로마-----소렌토----> 폼베이 (3시간)
폼베이 ------> 포지타노 (1시간)
포지타노 -----> 아말피 (1 시간)
아말피 --------> 로마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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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설렘으로 부터 시작된다.
며칠 전부터 짐가방을 꾸리고
공항에 도착하면 이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실감하게 된다.
행복은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해넘어갈 즈음에
로마 인근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로마 숙소를 출발하여 A1고속도로를 타고
나폴리로 향했다. A1 고속도로는 밀라노에서
나폴리까지 제일 먼저 만들어진 고속도로라고 한다.
세계3대 미항으로 알려진 나폴리..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어
옛 명성만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폴리는 먼 발치에서 항구 주변 풍경만
감상하고 지나쳤다.

여행의 출발지...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 면세점 구역

GATE 50 에서 탑승. 12시 35분 출발. 티웨이항공.
13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했다.
유럽 여행의 가장 큰 어려운 점의 하나다.

3일 밤을 묵은 HOTEL CALAIACO
바티칸시국 까지 40분 거리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호텔 주변이 고속도로와 도로로 둘러싸여
아침에 산책할 곳이 없어 아쉬웠다.

A1 고속도로를 빠저나와 소렌토 해안을 지난다.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폼페이까지는 서울~부산 거리 정도

폼페이 시내... 조그만 마을이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폼페이 유적 출입구에 이른 아침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폼베이 유적지 조감도

입구에 들어서자 언덕에 개양귀비가 햇빛을 받아
유적 사이에서 붉게 빛나고 있다.

서기 79년 갑작스러운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한가롭던 항구 도시 폼페이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화산재가 수㎞ 치솟아 올랐고 화산이 쏟아낸
뜨거운 돌덩이와 유독가스가 산비탈을 따라
시속 700㎞ 속도로 쏟아져 내렸다.

도시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도로 가장자리 구멍은 말 고삐를 고정시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화산 폭발 직후 하늘로 치솟아 오른 화산재와
화산암이 쏟아지면서 도시 주민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주민 대부분이 화산재에 묻혔는데 이들은 18세기부터 참혹한 모습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한때 폼페이 유적은 보석이나 예술 작품을 노리는
탐험가와 도굴꾼들의 무책임한 발굴 행위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초기 발굴자들은 유골 보존이나 죽음의 존엄성에
관심이 없었다.

프랑스 샤를 3세가 18세기 파견한 부르봉 왕가의
탐험가들은 초보적인 발굴 작업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헬레와 프릭소스의 집에서 발견된 희생자들의 유골도 훼손됐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희생자 유해를 석고 모형으로 보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했다.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는 1863년 폼페이 희생자
시신의 연한 조직이 썩고 남은 공간을 액체 석고로
채워 모형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폼페이 희생자 104명의 참혹했던 마지막 순간을 보존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희생자는 물론 화산
폭발 당시 폼페이 도시 주택의 가구, 일상용품처럼
썩기 쉬운 물품이 어떻게 놓여 있었는지 추정하고 있다.

폼페이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서 바라보는 순간
폼페이의 인상은 너무 강렬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포도주 항아리
돌로 지어진 집들과 계단, 성곽들은 마치 한참
건축이 진행 중인, 외장 마무리 공사를 앞둔
모습이었다.

2천년 전의 도시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온전한 풍경이었다.

마차가 다니는 차도와 사람이 걸어 다니는 인도가
구별돼 있고, 도로 곳곳에 식수로 사용하던 수도가
설치돼 있었다.

벽면 가득 섬세한 조각들이 새겨진 거대한 목욕탕과

사우나 시설도 있으며

로마 전통의 피시 소스를 비롯해 다양한 소스를
담던 항아리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상점,

빵을 굽던 화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빵집,

19금 상징이 버젓히 그려진 매춘가와 술집들은
2천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어느 집에서 그 시대 사람들이 막 걸어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풍경이었다.

상가 지역과 구분돼 있는 주택가 또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들이 확연히 구분돼 있었고,

부잣집에는 벽에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장식된
집도 있었다.

어느 부잣집 대문 앞에는 개조심이라는 글귀와

타일로 조각된 개 그림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계단형 객석을 갖춘 원형극장, 모자이크 무늬가
선명한 붉은 벽돌담은 로마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유적들을 보면서 2천년 전, 이 도시가 얼마나
번영했는지를 폐허가 된 유적지는 생생히 증언하고
있었다.

9시 되어 처음 입장할때는 한가하고 여유롭게
관람을 했는데

관광객 인파로 점점 북적이기 시작했다.

베수비오 산을 프레임에 담아본다.

단체 관광객이 지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호젓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원형극장터

중앙광장으로 매우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유적지에 개양귀비가
눈길을 잡는다.

광장에서 보이는 베수비오 산 정상부에 화산
분출 전의 모습처럼 구름이 잔뜩 걸쳐있다.

광장 주변 건축물

코린트 양식의 거대한 기둥이 남아 있는 이곳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로마 공회당이다

베수비오 산을 품고있는 유적들

폼페이는 지금도 유적 발굴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2천년 전 그 날, 이 도시는 얼마나 큰 비극에 휩싸였을까? 그러나 지금은 슬픔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수천명의 목숨이 사라진 거리 곳곳을 누비는
관광객들의 목소리 톤은 밝고 유쾌하다.
그저 폐허의 미를 간직한 도시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쁜 관광지일 뿐이다.

더구나 2천 년 전 비극의 장본인인 베수비오 산은
변함없이 폼페이의 뒤에 늠름하게 서 있는데,
모두 그 존재를 잊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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