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자림로 사려니 숲길 입구에
도종환 시인의 "사려니 숲길" 시비가
보일락말락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읽어 보았지만
글씨가 너무 작아 읽기 힘들어 여기에 옮겨
되새겨 보았다.

사려니 숲길 / 도종환
어제도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리 십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

나도 그대도 단풍 드는 날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산간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
'시 소설 행간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암송~1> 꽃 / 김춘수 (0) | 2025.07.23 |
---|---|
봄길 / 정호승 (0) | 2025.04.03 |
봄은 / 신경림 (0) | 2024.04.09 |
산수유꽃 피는 사연 / 이돈권 (0) | 2024.03.20 |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3) | 2024.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