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안도현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 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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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이미지를 한번 떠올려 볼까요?
- 외로움, 고독, 시련, 견딤, 한적함, 평화, 고고함, 자유, 힐링 - 등 다양하군요.
우리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우리는 종종 이 ‘섬’이라는 삼빡한 단어를 떠올리곤 합니다.
세상 한 쪽에 존재하면서 세상을 위무해 주는 공간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세상에 깃들지 않는 단어들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신, 천사, 무릉도원, 우주’ 등과 같이 우리네 삶의
고귀한 피난처 역할을 담당한 공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안도현 시인의 ‘섬’을 읽으면서 ‘섬’이라는 이런 이미지가 다시금 재조명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어느 한적한 섬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서 일박을 해보라는 시인의 강한 어조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사고를 각성케 합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섬에 들어가기 전에는 단순히 평화롭고 여유 있는 힐링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섬 역시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가를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시인의 말처럼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말입니다.
시인은 섬을 통해 치열한 존재의 삶의 현장성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어느 곳에도 우리가 바라는 무릉도원은 없다는 것을....
그 나름대로 삶의 치열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피신하는 자들이여,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 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그러면 니체가 한 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
네가 맞닥뜨린 세상과 네가 생각하는 세상은 다르다는 것을.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라고 시인은 역설합니다.
섬은 저 홀로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지
섬 속에 갇히면 섬을 볼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혹시 우리가 만약 섬에 간다면
섬처럼 ‘밤새도록 뜬눈 밝히’고 돌아온다면
그 다음날
-아모르파티amor fati-를 되새기게 될지...
(전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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