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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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1921~1968)
시인. 서울 출생.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초기에는 모더니즘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으나, 점차로 강렬한 현실 의식과 저항 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시정(詩情)을 탐구하였다. 시집으로 “달나라의 장난”(1959), “거대한 뿌리”(197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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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김수영 시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하기 직전에 발표한 유작(遺作)으로, ‘풀’과 ‘바람’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민중의 건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작품이다.
이 시에서 ‘풀’은 세상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자연물로, 오랜 역사 동안 권력자에게 억압받으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맞서 싸워 온 민중, 민초(民草)를 뜻하며, 이와 반대로 ‘바람’은 풀의 생명력을 억누르는 세력, 곧 민중을 억압하는 사회적 힘, 독재 권력과 외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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