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달다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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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매력은 함축과 생략과 상상에 있음을 이 시를 통해 또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풍결 달다’라는 시가 가지는 이러한 매력은 또한 짧은 몇 행이지만 하고자 하는 의미를 다 담아내고 있는 점에 있기도 합니다.
시인은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에 있는 와불을 시의 첫머리에 끌어들여 호기심과 주제를 향한 시의 문을 엽니다.
와불은 누워있는 불상인데, 좌불이나 입상의 불상과는 또 다른 특이한 인상을 남깁니다.
가장 편안한 자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누워있다는 것에서 움직이지 않고 정체된 어떤 존재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이 시에서 사랑하는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풍경을 달고 돌아왔다’라는 구절에 연관시킨다면 바로 고요하거나 조용한 그대의 마음을 일깨워 요동치게 하고 싶은 의미가 함축적으로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풍경‘은 그대의 마음을 일깨우는 도구이며, ’풍경 소리‘는 화자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시가 가지는 큰 매력은 바로 이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멀리 있어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만은 함께 하기 위해 바람으로 달려가 그대 가슴에 달아 놓은 풍경을 울리고, 그 소리에 또 ’그대‘ 마음을 울리는 것을 상상하게끔 하는 점에 있습니다.
즉 시를 읽고 있으면 재빨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풍경을 단 이유를 알게 되고 그 풍경 소리가 나에게서 나온 ’그대‘에 대한 그리움의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됩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시어들의 어울림. 쉬운 시어들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 간단명료하지만 생략과 상상의 이미지를 처마 끝으로 피어 올리는 한 폭의 그림. 읽고 난 뒤에도 그 풍경소리가 쉽게 잠들지 않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전종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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