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고갯길 5차 라이딩
2019. 7. 9.
코스 ; 수안보~지릅재~미륵리~하늘재~관음리~비지재~문경읍~ 문경새재~이화령~소조령~수안보
거리 : 65 km
오늘은 월악산 국립공원의 주흘산과
문경새재 둘레 고갯길을 라이딩하였다.
충주시 수안보를 출발한 자전거는 지릅재(수안보
~미륵리)를 넘고, 하늘재(미륵리~관음리)를 넘고,
이화령(문경~괴산)을 넘고, 소조령(괴산~수안보)
를 넘어서 다시 수안보 상록호텔로 돌아올 참이다.
수안보는 백두대간 고갯길에서 단양과 보은의
중간지점이다. 단양에서 수안보까지는 월악산
둘레 고갯길을 지나고, 수안보에서 보은까지는
속리산 둘레 고갯길을 지난다.
<백두대간 이화령 표지석>
수안보는 충북 충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하는
면이다. 충주 동남쪽으로부터 21km 지점에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제천시 한수면, 남쪽
으로는 괴산군 연풍면, 서쪽으로는 괴산군
장연면, 북쪽으로는 살미면에 접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수안보는 왕의 온천수로 유명
하며, 여러 기관의 연수원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라이딩 이동 경로>
<라이딩 코스 개념도>
<라이딩 상승고도>
아침 6시에 수안보 인증센터에서 라이딩을 시작하였다.
해뜨는 시간은 지났으나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아침 여명이 희미하다.
선선한 새벽 바람을 가르며 가는 길에
길 옆 카페 앞에 가꾸어 놓은 예쁜 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508번 지방도를 타고 미륵리로 가는 길.
길가에는 사과 밭이 많이 있었다.
인근 문경의 특산물이 사과인데 수안보면에도
사과밭이 많이 보인다.
수안보면은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월악산 산행은 이 508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송계계곡에서 출발~덕주사~월악산(1097m) 정상
~송계리로 내려오거나 보덕암으로 내려올 수 있다.
지릅재는 높이 540m이며, 수안보에서 미륵리로
가는 고갯길로 석문계곡과 송계계곡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지릅재의 남쪽에는 마폐봉(922m), 북쪽에는
북바위산(772m)-사시리고개-773고지-박쥐봉
(782m) 등으로 연결되는 고산지대가 있는데,
지릅재는 남쪽의 마폐봉과 북쪽의 773고지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미륵리라는 명칭은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보물 제96호인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미륵리 자랑비가 세워져 있다.
신라 말, 고려초에 건립한 미륵리 마을은
동양 최대 미륵 석불입상과 문화재가 산재
하며 영남과 호서를 연결하는 최초의 옛길인
하늘재가 있는 마을임을 설명하고 있다.
하늘재와 지릅재 사에에 있는 미륵리는
월악산, 만수산, 포암산, 부종, 북바위산,
박쥐봉이 감싸고 있는 마을이다.
미륵리 마을은 미륵대원지 초입에 있다.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 이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미륵대원지나 하늘재를
갈 수 있으며 안쪽까지도 차가 갈 수 있다.
하늘재 역사 관찰로 안내도
마을 안쪽으로 최초의 옛길인 하늘재와
미륵대원지가 있다.
미륵대원지의 석조여래입상은 아직 공사 중이라
가림막이 있어 가까이 가야 석불을 뵐 수 있지만,
폐사지는 꽉찬 보물로 가득하여 어떤 고찰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
하늘재로 들어선다.
하늘재에는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다.
하늘재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다.
천년사직 신라가 멸망했다.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그의 누이 덕주공주와 함께 서라벌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하늘재를 넘고 미륵리에 당도한 마의태자는
그곳에 미륵입상을 세우고,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건립한 후 오랜 세월을 기도하며
신라의 부흥을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그들의 내세는 오지 않았다.
망국의 한을 품고 하늘재를 넘었던
마의태자는 결국 금강산을 향해 떠났다.
하늘재는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시대 초인 156년
아달라이사금왕의 북진을 위해 하늘재를 개척했으며,
죽령 옛길보다 2년 앞서 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충청도 충주와 경상도 문경 사이의 고갯길 중 가장 낮다.
하늘재라는 명칭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고개라 하여 붙여진 것이지만, 실제로는
고갯마루의 높이가 해발 525m로 그다지 높지 않다.
미륵리에서 문경 관음리로 넘어가는 하늘재는
흙길로 잘 조성되어 있다.
거리는 약 2.5 km 로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도
가도 좋다. 자동차는 갈 수 없다.
하늘재는 당시 한반도의 남북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교통로였다. 삼국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접경 지역에 위치하여 군사상으로 볼 때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지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고개를 점령한 국가가 전투에서 단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늘재는
국토방위와 영토확장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다. 삼국 모두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북진과 남진정책을 추진했는데 하늘재는
이러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길목이었으므로
전투가 매우 심했던 격전지였다.
백두대간의 중간쯤에는 북쪽으로 포암산(962m),
남쪽으로 부봉(935m)과 월항삼봉(851m)이 자리하고 있다.
남북의 산을 연결하는 산줄기 사이에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곳이 바로 하늘재의 정상이다.
연아 닮은 소나무...???
이 나무는 희귀목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하여 충주시와 월악산 국립공원사무소에서
보호수로 정해놓았다고 한다.
관음리쪽 하늘재 입구..
하늘재는 동달천과 산북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면 어느
사면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도달하는
바다가 완전히 달라진다.
하늘재에서 동쪽 방향으로 흘러가면 낙동강,
서쪽으로 흐르면 한강의 분수령인 것이다.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를
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과 고대 한반도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고구려, 신라, 백제가 영토
확장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던 기상을 생각하고,
불교의 전래를 통한 새로운 문화의 발전을 되새겨
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잊혀진 수없이 많은 사건들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가며 옛길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하늘재를 마음에 품고 간다.
하늘재에서 관음리로 내려오면서 뒤돌아본다.
포암산이 뒤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
문경도자기교육원...
문경은 도자기의 고장이다.
도자기의 맥을 300년간 끊어짐없이 이어오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서 발굴된 도요지만도 87곳.
전국에서 선정된 도자기 명인 6명중 3명
(김정옥,천한봉,이학천 선생)이 이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문경에는 이들을 포함, 20여명의 도예가들이
전통 도자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 발물레를 고집하고 장작을 넣는
전통 가마를 고집하는 것도 큰 특징이라고 한다.
하늘재에서 다운으로 내려와 901 도로
삼거리에서 문경 방향으로 간다.
문경으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평촌교를
지나 주흘산 아랫 동네인 평촌마을로 들어섰다.
앞에는 우람한 주흘산이 우뚝 솟아 있다.
마을 담벼락에 능소화가 활짝 피었다.
문경은 사과축제가 있을 정도로 사과로 유명하다.
농부들은 더위도 잊은채 사과에 농약을 살포하느라 바쁘다.
주흘산 아래 평촌마을에서 문경방향으로 방향을 튼다.
주흘산을 옆으로 끼고 문경으로 간다.
팔령(비비재)를 올라간다.
오르막에서 지친 몸이, 내리막 바람 속에서 다시
살아나 자전거는 또다시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오르막이 끝나는 고갯마로 쪽을 아예 잊어버리고
길바닥에 몸을 갈면서 천천히 나아가야만 끝까지
갈 수 있다.
주흘산은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높이 1108.4m로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또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
문경의 진산(鎭山)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문경읍을 지나 문경새재로 나가는 삼거리
백두대간의 중심 문경~~
문경은 조선시대의 옛길로 알려진 문경새재
(명승 제32호)와 문경관문(사적 제147호)이
유명하며, 일대에는 문경새재도립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문경읍에서 수안보까지는 새재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국토종주 새재 자전거길은 충주 탄금대에서 시작하여
수안보, 이화령, 문경, 상주 상풍교까지 이어지는
100km 자전거길로 국토종주 자전거길 중 가장 힘든
라이딩 코스이다.
문경새재에 도착했다.
<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매우 다양하다.
고갯길이 워낙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고갯길
주변에 새(억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새로 낸 고갯길>이다.
문경새재는 영남과 경기,충청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었다.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
으로 넘나들던 길로, 문경(聞慶)이라는 이름과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경사로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도 과거길
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문경새재는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
들이 좋아했던 고갯길이었다. 그래서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다고 한다.
<선비의 상>
과거급제를 꿈꾸며 지나던 고갯길
선비들의 한이 서려있는 옛길이다.
문경새재길은 자전거 통행이 금지되어
입구에서 인증 사진만 찍고 나왔다.
진도 섬사람들은 <진도아리랑>의 첫머리에
<문경새재는 몇 굽이냐/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로구나...>라고 노래한다.
섬 사람들이 가보지도 않은 험준한 고개를
눈물로 노래할 때, 그 노래는 당대 인간이
현실 속에서 고난을 일깨우는 노래로 들린다.
지금 문경새재에는 굽이가 없다.
길은 펴져서 구간별로 포장을 하고 굽이를
이루던 옛길은 토막으로 끊어져 숲속에
흩어져 있다.
수백년 동안 밟힌 옛길은 <장원급제길>로
이름표가 붙어있다.
문경새재 입구 주변에 형형색색의 꽃들로
조경을 잘 가꾸어 놓았다.
문경새재를 나와 이화령 고개를 오른다.
멀리 중앙에 V 자로 파인 곳인 이화령이다.
아래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간다.
푸른하늘과 구름의 조화가 아름답다.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고개를 넘는다는 일은 삶의
전환과 확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고갯마루는 그 전환의 통과 의례로서
괴기스런 전설과 민담을 빚어낸다.
이화령 오르는 쉼터에서 땀을 식힌다.
문경에서 오르는 이화령 길은 약 7 km
정도로 쉬엄쉬엄 올라가면 된다.
이화령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지는 않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가며 산허리를 꺾어
길을 냈기에 강한 듯 하면서도 유하다.
드디어 백두대간 이화령에 올랐다.
30여분 동안 햇빛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산새 지저귐을 들으면서 올라왔다.
이화령은 두번째다.
6년전에 문경에서 오를 때는 부슬비를 맞으며 올라왔었다.
시간은 흘렀으나 변하는 것은 없어 보인다.
이화령고개는 예로부터 동서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문경과 연풍을 연결한다.
이화령터널과 중부고속고도로 개통으로 인해
차량 통행이 줄어들어 현재는 새재 자전거길과
백두대간 27구간의 등산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연결해주는 이화령고개는
일제강점기 시절 도로개설과 민족정기의 말살
이유로 단절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2012년에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백두대간이 다시 연결되었다.
백두대간 이화령 표지석~~
새재자전거길 표지석....
귀로 보이는 곳이 괴산군 연풍면이다.
백두대간 이화령 인증센터
이화령에서 신나게 다운해 내려오면 만나는 지역
연풍면이다...
행촌교차로
행촌교차로에서 수안보 방향으로 간다.
수옥정 관광단지를 지난다.
조령관문으로 가는 갈림길
느릿느릿 오르막을 오르면 소조령에 이른다.
소조령에서 수안보까지는 약한 내리막길...
오늘 라이딩을 마지막 부분이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소조령의 표지판도 찍어본다.
수안보 상록호텔 출발점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시작한 오전 라이딩
좋은 날씨에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역사적인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여유있게
즐긴 라이딩이었다.
'국토종주 라이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전거여행>부안 격포항~선유도~군산 (0) | 2019.09.29 |
---|---|
백두대간 고갯길 라이딩 결과 (0) | 2019.09.07 |
자전거여행> 백두대간 고갯길 4차(무주~신풍령~남령재~육십령~장계) (0) | 2019.07.04 |
자전거 여행>백두대간 고갯길 3차(대관령옛길~큰골임도~닭목령~ 안반데기~피목령) (0) | 2019.06.26 |
자전거여행>백두대간 고갯길 2차(육십령~무룡고개~봉화산~복성이재) (0) | 2019.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