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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나무 이야기

겨울 나무들의 공존

전승기 2017. 12. 27. 11:26

겨울 나무들의 공존

 

 

 

 

 

숲의 고수들은 흔히 숲에서 나무를 만나는

가장 멋진 시기를 겨울로 꼽는다.

초보 식물학자 시절엔 그 말이 참 동감하기 어려웠다.

잎을 보고, 꽃을 보며, 나무를 익히기에도 벅찬 시절에는

겨울은 숲과 나무를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마는,

그래서 산에 가는 일을 잠시 쉬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머리와 눈으로 나무들을 만나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머릿속에서, 가슴속으로 나무들이,

풀들이 들어차 앉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따라 변하기 시작했다.

회갈색 수피의 나무들이 늘어선

겨울 숲의 깊이와 운치를 알게 되었고,

그 풍광이 마음을 정갈하게 하며,

사분사분 고요하게 눈이라도 내리면,

숲의 땅들은 그 흰빛의 배경을 이불처럼

포근함을 간직하며 마른 봄이 오기까지

수분을 공급하며 촉촉하게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알았다.

 

그저 마른 나뭇가지라고 불렀던 겨울나무들이

결코 마르지 않았음도 알았다.

진짜 마르면 나무는 죽는다.

물론 죽은 나무줄기는 목재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는 한다.

다만 추운 겨울, 얼어버릴 수 있는

수분을 최소화해 견뎌내는 것이다.

기공처럼 찬바람이 드나드는 구멍을 막고,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상록수들은

잎에 왁스칠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견뎌내는 것이다.

 

수피만 보고도 어떤 나무인지를 알아보기

시작한 때는 내 스스로 대견하였다.

옆으로 트는 줄무늬(이를 피목이라고 부른다)를

가진 것은 벚나무 종류, 마름모 모양을 가진 것은

은사시나무, 박달나무와 물박달나무는

암갈색 반질거리는 수피와 회색으로 너덜거리는

수피만 보아도 금세 구별이 가능하다.

 

북쪽이 고향인 자작나무의 흰빛 수피는 추운 곳일수록

그 흰빛이 뽀얗게 올라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심에서

검은 무늬가 생기는 자작나무를 볼라치면 객지에 와서

고생하는 듯싶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좀 더 다가가 겨울나무 가지를 들여다보면

지난 세월의 흔적도 보인다.

가지엔 잎이 달렸던 흔적(엽흔이라고도 한다)이 고스란히 나와 있다.

지난 여름, 얼마나 많은 잎들이 어떤 모습으로 달려,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를 알 수 있다.

매년 자라 올라온 줄기의 길이를 보면 지난 몇 년 동안

나무들이 살아가는 환경조건이 어떠한지와

그래서 얼마나 자랐는지도 보인다. 

 

 

고스란히 드러난 나무줄기들의 모습은 그 나무들이

일생을 살아가는 전략도 읽게 해준다.

햇볕을 따라 빨리 위로 자라는 ‘정공법’을 택하는지,

가지를 펼쳐내고 작은 햇살이라도

모두 다 받아내는 ‘실리형’을 택하는지,

심지어 다른 나무줄기에 기대어 틈새를 타고 올라가는

‘기회주의적인 전략’인지도 나타난다.

독일가문비나무처럼 축축 늘어진 줄기들을 보면

그 나무의 고향에서 눈을 떨어뜨려 무게를 줄이는 게

부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우선의 조건이구나

하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나무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그렇게 줄기와 가지를 세우고, 뻗고, 늘어지며, 자라고 있는

치열한 삶의 흔적 속에서도 공존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 보이는 때이다.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들이 서로서로 경계를 가지고

그 조화로움으로 숲을 일구며 그 공간에 공존한다.

그런 숲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치열한 경쟁의 끝이 질시와 대립인 사람의 세상과는

참으로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게 의미가 되는

겨울나무의 모습은 겨울눈에 있다.

나무는 가장 모진 겨울을 보내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가장 연한 조직을 겨울눈(冬芽) 속에 담고, 미래를 준비한다.

나무마다 물푸레나무같이 검은 가죽 같은 껍질을,

백목련처럼 털코트 같은 껍질을 갖는다.

그 속에 새잎을 혹은 새꽃을 혹은 꽃과 잎을 함께 담고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그 속엔 새봄이 담겨 있고,

그것은 곧 미래이고 희망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키우는 것이다. 

 

나무도 나이가 든다.

한 풍파를 거치면서 굳어지고, 상처받고, 단단해진다.

사람과 똑같다. 한 해 한 해 나이테를 늘려가며

깊은 뿌리와 큰 그늘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사람과 닮았다.

그런데 나무는 겨울에 준비해 가장 보드랍고

연한 새 조직을 세상에 내놓는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고집과 경험이라는 것을 간판삼아

스스로 만든 세상에 갇혀 점점 딱딱해지고 있음을 경계하곤 한다.

그런데 수백년 묵은 나무는 매년 연둣빛 새싹을 올려내고, 꽃을 피운다.

그러니 나무란 존재에 어찌 빠져들지 않겠는가.

 “더도 덜도 말고 나무처럼만”이라고 하면 너무 큰 욕심일까!

 

나무가 모여 만든 숲.

그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들의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닿는 것은,

그 숲으로 자꾸 발길이 가는 것은 ‘닳고 닳은’ 속세가 힘겹기 때문이다.

숲은 세상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숲의 따뜻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이유미의 나무야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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