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밤이 오면
김내식
호롱불 심지 끝에
하늘하늘 타는 불꽃
뚫어진 문틈으로 들어 온
황소바람에 흔들리고
아랫목은 아이들 차지
청솔가지 매운 연기에
눈물 짖는 어머니
샛노란 주둥이 떠올리며
새알 내알, 보글보글
팥죽 끓는다
윗목에 새끼 꼬던 아버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죽을
헛간, 굴뚝, 변소 간
두루 다니며 뿌려
액운을 몰아낸다
날마다 먹는 죽
밥 달라고 투정하면
새알을 안 먹으면
나이가 제자리라니
호호 불어 식혀 먹는다
하늘나라에 눈발이 흩날리고
문풍지 부르르 떠는
동짓날 밤이 오면
산에 계신 우리 부모님
더욱 그립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추웉 겨울 날
어머니께서 만들어준 벙어리 장갑을 끼고
추운 줄 모르고 뛰어 놀다가도
어머니께서 부르시면
불이낳게 집으로 달려오던 때가 있었다.
동짓날이 되면
어머님은 분주하셨다.
팥을 물에 불려
솥에 팥을 넣어 놓으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은 아버지 몫
방앗간에서 빻아온 쌀가루를
함박에 담아 물을 넣어 반죽해 놓으면
가족끼리 삥 둘러앉아 새알을 만들었다...
동그랗고 보기좋게 만들려면 숙련이 되어야 했다.
찌그러진 녀석, 왕사탕처럼 큰 녀석,
메추리알처럼 삐쭉한 녀석..
어머니께서 시범을 보여주었으나
손바닥으로 요리조리 돌려보아도
어머니께서 만든 모양은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다양한 모양을 가진 새알로
팥죽을 쑤어 먹었다..
동지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시고...
간식거리가 많지 않았던 그 때
팥죽 한그릇은 포만감과 더불어
우리 가족을 포근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어린 시절에는....
오늘 동짓날이라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항상 아궁이 차지를 하셨던
아버님은 하늘나라에 계시고...
다음 주에는 어머님을 찾아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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