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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설 행간 모음

나무 송(頌) / 이양하

전승기 2016. 3. 18. 09:13


나무 송(頌)  ........이양하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滿足)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處地)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움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義理)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意思)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말로 바람장이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 올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유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도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해 하는 법이 없다.

같은 나무 이웃 나무가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나무는 서로 속속들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정하고 공감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기쁘고,

일생을 이웃하고 살아도 싫증나지 않는 참다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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