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고 행복한 하루

둘레길 트레킹

한양도성 순성길(인왕산~북악산~낙산) 트레킹

전승기 2022. 10. 2. 11:34

한양도성 순성길 트레킹

 

2022. 10. 1.

 

코스: 숭례문~돈의문~인왕산~북악산~혜화문~낙산~흥인지문(동대문) (18.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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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역에서 06시 20분 출발(KTX)

서울역 08시 12분 도착

 

10월 연휴 첫날 서울 나들이

낮에는 한양도성길을 트레킹하고

오후에 아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햇빛이 카랑한 날

맑은 날이기는 하나 미세먼지 나쁨 예보

인왕산에 올라보니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릿하다.

 

연휴 시작인지라 한양 도성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북한산 능선을 배경으로....

 

 

 

진행한 트레킹 코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숭례문, 돈의문, 인왕산, 북악산, 낙산으로 진행했다.

 

 

 

한양도성(사적 제 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도성이다.

성은 백악산, 인왕산,  목멱(남산), 낙산을

연결하여 쌓았으며 전체 둘레는 18,127m이다. 

 

 

 

태조는 지금의 서울인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년)에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여 한양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1396년 1월부터 시작한 축성공사에 동원된

인원 총 118,049명에 달하는데

이는 당시 총인구의 4%에 육박하는 인원이었다.

<다음백과>

 

 

 

오늘 트레킹은 서울역에서 나와 숭례문에서

한양도성길을 시작했다.

아침이라 도로는 한가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도로변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국화가

가을을 느끼게 해주었다.

 

 

 

덕수궁 돌담길...

이른 아침인데도 가족 단위로 산책나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마도 북악스카이웨이를 오르겠지...

 

 

 

정동길을 걷는다.

정동길은 근대 역사의 현장이다.

고종의 경운궁이 있었고 아관파천의 러시아

대사관이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대사관도

있어 외교의 최전선이었다.

을사늑약이 이루어진 중명전도 정동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손탁호텔은 지금의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자리다. 

 

 

 

돈의문은 없어지고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월암근린공원을 지나고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홍난파 가옥..

홍파동 언덕배기에 2층의 아담한 독일식

적벽돌 건물로 1930년대에 지어졌다.

홍난파가 생의 마지막 6년을 보낸 집이고

독립운동과 친일로 이어진 한 예술가의 궤적이다.

벽에는 담쟁이가 옛스러움을 더해준다.

 

 

 

인왕산 도성길은 도성 내부와 외부로

갈 수 있다.

 

 

 

인왕산 입구

오늘은 도성길 내부로 걸었다...

 

 

 

인왕산 도성길 안내도.

 

 

 

딱딱하게 보이는 성벽 주변에 코스모스가

반갑다. 코스모스의 아련한 향기가 바람에

묻어 나온다.

 

 

 

요사이 기온이 낮아져 긴팔을 입고

나왔더니 여간 더운 것이 아니다.

성곽길 오르다 너럭바위에 앉아

북악산과 청와대를 보면서 쉬어간다.

 

 

 

오늘 미세먼지가 많아 시야가 나쁘다.

범바위에서 올라온 성곽길을 되돌아보니

남산타워가 실루엣처럼 흐릿하다.  

 

 

 

범바위에서 인왕산 정상에 이르는 성곽길

 

 

 

인왕산 정상 338m

정상부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한참을

기다린 후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인왕산 정상에서 북쪽 방향

북한산 능선의 족두리봉, 향로봉, 보현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려서다 기차바위를

다녀오기로 한다.

 

 

 

기차바위에서 보이는 인왕산과 안산

 

 

 

기차바위 양 옆으로는 수직 직벽의 낭떨어지

 

 

 

기차바위에서 다시 되돌아와 창의문

방향으로 진행한다.

부부 소나무를 만난다. 인위적으로 나무

기둥으로 연결해 놓은 듯한 연리지.

 

 

 

인왕산을 내려와 윤동주시인 문학관을 

지나 창의문으로 향했다.

 

 

 

창의문. 북문 또는 자하문이라고도 한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쌓을 때 북서쪽에

세운 문으로, 돌로 쌓은 홍예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 구조의 문루가 있다.

4대문 중 북대문인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어

경기도 양주 등 북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문을 거쳐서 왕래했다.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338m), 남쪽의 남산( 262m),

동쪽의 낙산(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북악산은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창의문에서 백악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해 쉬엄쉬엄 올라야 한다.

 

 

 

북악산에는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어

일반인의 등산이 금지되었다가 2007년 일부

개방되고, 2022년 5월에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전 구간이 완전 개방 되었다고 한다.

 

 

 

담쟁이도 가을에 물들어간다.

 

 

 

전쟁의 역사는 곧 성곽의 역사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성곽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곽은 그 자체로 눈물과 땀으로 만들어진

호국 의지의 결과물이며,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백악산(북악산) 정상  342m

 

 

 

 

 

 

길게 이어진 성곽

우리나라는 어디든지 눈을 돌려 가까운 산을

바라보면 허리 긴 산성이 있고,

지리상 요충지인 마을 어귀 작은 구릉에는

어김없이 토성(土城)이 쌓여 있다.

 

 

 

여기에 두 팔을 벌려 넉넉하게 평지를 감싸

안은 읍성(邑城)까지 더하면 한반도

어디에서든 성곽을 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1·21사태 소나무

청와대 습격 당시 군인과 간첩단의 총격전의

흔적이 남아있다.

 

 

 

총탄의 흔적

 

 

 

청운대

청와대를 비롯하여 시내 전망이 좋다.

 

 

 

백악곡성에서 바라본 백악산 정상부

좌측으로 목멱산(남산), 우측으로 인왕산 

 

 

 

백악곡성에서 바라본 북한산 마루금

족두리봉부터 보현봉까지 암봉이 이어진다.

 

 

 

우리는 흔히 과거 문화유산의 겉모습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중에서도 거대하고 웅장한 성곽(城郭)이나

궁궐을 바라보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선조의 업적을 마음속에 담아두곤 한다.

 

 

 

오늘과 같이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어떻게 이토록 엄청난 대역사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심을 품으며

동시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내 눈앞에

펼쳐진 그 엄청난 광경을 연출하려면 그보다

몇 배 더한 백성들의 고통이 그 안에 스며

있다는 사실 또한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돌들과 아름드리

통나무들을 옮기려면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것도 단순히 하루 이틀만 하고 마는 일이

아니라 짧으면 몇 개월, 길면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했다.

우리가 기쁨의 감탄사만을 연발하며 바라보는

역사의 흔적은 한편에서 백성들의 눈물과

땀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말바위 안내소를 지나 와룡공원으로 향한다.

 

 

 

와룡공원 외부 성곽길

 

 

 

와룡공원 외부 성곽길과 도심의 빌딩숲이 

어우러지는 옛스러움과 현대 문영의 조화

 

 

 

혜화문 가는 길은 주택과 성곽이 함께 어울어진다.

 

 

 

길과 이어지지 않은 혜화문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으니 도심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낙산공원 외각길

 

 

 

낙산공원에서 남산이 가까이 보인다.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안산, 인왕산, 북악산,북한산 보현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승자의

역사를 중심으로, 위대하고 용맹한 개인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정작 그 승리의 주역은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병사와 백성이다.

 

 

 

트레킹의 종점인 흥인지문..

 

승자의 찬란한 미소 뒤에는 어김없이 그 승리를

일궈내려고 몸을 헌신짝처럼 내던져야만 했던

많은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직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

역사 속에서도 면면히 흘러내리고 있다.

역사의 ‘작은’ 사람들은 기록에는 남지 않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문화유산에는

그들의 땀과 눈물이 짙게 배어 있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그저 감탄의

웃음을 터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찬란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접 돌을 쪼고 나무를

다듬었던 백성들의 갈라진 손바닥을

조금이나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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