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기울어가는 때의 시적 인식,
즉 마침의 순간에서 되돌아보는
생의 투명한 깨달음을 담고 있는 시.
시 암송 ~~ " 일흔 세번째 "
김규동 님의 " 해는 기울고 "
(시집, 느릅나무에게, 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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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기울고 / 김규동 (1925 ~ 2011)
운명
기쁨도
슬픔도
가거라
폭풍이 몰아친다
오, 폭풍이 몰아친다
이 넋의 고요
인연
사랑이 식기 전에
가야 하는 것을
낙엽 지면
찬 서리 내리는 것을
당부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보이리
길이
■ 느낌 한마디 ■
♤ 이 시는 세 편의 짧은 단시 "운명", "인연", "당부"
로 묶여 노년의 사유와 생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초월적 평온을 담고 있다.
♤내용
<운명>
시인은 기쁨과 슬픔을 모두 보내며 말한다.
삶의 폭풍은 여전히 몰아치지만, 더 이상 거기에
마음을 내주지 않겠다고. 이는 체념이 아니라,
수많은 파도를 지나온 끝에 도달한 내면의 고요다.
바깥은 어지러워도 안쪽은 흔들리지 않는 상태,
이 시의 고요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에 가깝다.
<인연>
관계에 대한 성숙한 태도가 드러난다.
사랑이 식기 전에 떠나야 한다는 말은 차갑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상대와 자신을 함께 지키려는
깊은 배려가 있다.
붙잡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상처가 되기 전에
놓아주는 것이 사랑일 수 있음을 이 시는 조용히
보여준다.
이별조차 책임지는 태도, 그것이 어른의 인연이다.
<당부>
운명, 인연 이 두 시의 태도를 삶 전체로 확장한다.
끝까지 가보되, 막히면 앉아서 쉬라는 말은 포기
하지 말라는 말과 자신을 소모하지 말라는 말을
동시에 품고 있다.
길은 달릴 때보다 멈추었을 때 보일 수 있다는 이
시의 깨달음은 조급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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