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박남규 서울대 교수의 '3無 수업'
필기·교과서·시험 없애니… 아이디어 솟아나
"냉장고 청소하다 선반 뒤쪽 남은 음식 발견하고 놀랄 때 있죠? 저희는 사각형 대신 원기둥 모양 냉장고를 개발했어요. 원형 선반이 360도 회전하니 음식이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안 보이는 경우가 없겠죠?" 한 학생이 종이로 만든 냉장고의 둥근 선반을 빙글빙글 돌리며 '음식 쓰레기를 줄이는 친환경 냉장고'라고 설명했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이끄는 '디자인 사고와 혁신' 강의실. 123㎡(약 37평) 크기의 이곳은 창업 박람회장으로 탈바꿈해 시제품을 설명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생들 50여명으로 북새통이었다. 철학·경영학·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전공 학생이 모인 벤처경영학 연합전공의 필수과목이다.
이 수업은 필기, 교과서, 시험이 없는 이른바 '삼무(三無) 수업'이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실제 벤처 기업을 창업할 수 있을 정도의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목표다. 박 교수가 가끔 이론 강의를 하지만, 대부분 학생끼리 토론을 하거나 조별 과제를 한다. 박람회 발표 때 박 교수는 부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학생 설명을 듣고 "다른 조 아이템을 살펴보고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라"고 조언할 뿐, '이렇게 고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교수님 코멘트를 듣고 싶다"고 해도 "지금 내가 어떤 조에 '잘했다'고 하면 그 조의 발전 가능성을 없애는 독"이라고 답할 정도다.
박 교수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을 해야 살아 있는 수업"이라며 "실제로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상호작용을 하니까 10주 차부터는 사고력이 올라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학점은 조별로 낸 아이디어의 상품성 평가가 핵심이다. 질문도 중요하다. 의미 있는 질문을 한 학생의 이름을 조교가 체크해 가산점을 주기 때문이다. 정치 뉴스를 모아 보여주는 앱을 개발한 박성환(경영학 3학년)씨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구체화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창의성 교육이 절실하다고 깨달은 것은 10년 전 두 가지 사건이 계기였다. 하나는 애플보다 연구개발비를 훨씬 많이 쓰는 삼성전자가 영업이익률은 뒤처지는 것을 보고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하면 안 되고 남과 다른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성과를 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다른 하나는 특강하러 간 고교에서 학생들이 엎드려 자는 것을 보고 '살아 있는 공부를 하면 잠도 안 자고 창의성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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