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여행>수상도시 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만나다
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만나다
202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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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죽기 전에 반드시 보아야하는 도시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
배가 교통수단인 도시
베네치아에 들어간다.

베네치아에 들어가는 방법은
기차로 산타루치아역에서 하차하여 가는 방법,
버스로 Tronchetto B 까지 가서
배를 타고 본섬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우린 Tronchetto B 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Zaccaria D 여객선터미널로 들어갔다.

Tronchetto B 항 주변 풍경

Tronchetto B 항 주변 풍경

여객선은 출발... 베네치아의 성당 첨탑이 보인다.

산마르코 종탑이 우뚝 솟아있다.

Zaccaria D 여객선터미널 도착

여객선에서 내려 산마르코 광장까지 걸어 가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운하로 되어 있고
교통수단은 배...

성모 피에타 교회(Chiesa della Pieta-Santa Maria della Visitazione)
음악 '사계'로 유명한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는 베네치아의 고아원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하며 고아 소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당시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비발디는 어렸을 때 천식으로 병약했다.
그의 어머니는 비발디를 교회에 바치겠다고
서원했다. 비발디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신학교에
들어가 10년간 사제교육을 받고 1703년 교회가
운영한 이곳, 피에타 고아원으로 발령받아 30년
가까이 사제이면서 음악교사로 지내며 명곡
대부분 작곡했다.

피에타 고아원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 특히 여자
아이들을 위한 보호시설이었다.
비발디는 음악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고아 소녀들에게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특히 고아 소녀들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음악지도를 했다.

중세 베네치아는 지중해를 제패한 해상강국이었다.
해양 무역을 통한 해상활동이 빈번하고 전쟁 또한
많았다.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바다로 나갔으며,
그만큼 전쟁터나 무역선, 어선을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이러다보니 고아들도 많이 발생했다.
전쟁터나 해난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여성들이 밤중에 몰래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고아원 건물에 구멍을 파서 요람을 밀어넣을 수
있도록 한 슬픈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성당 오른쪽 흰색 대리석 건물은 호텔 메트로폴
(Hotel Metropole)로 바뀌어 운영중이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무역이나 회계 등을 가르쳤으며,
음악은 교양을 위해 특히 여자 고아들에게 많이
가르쳤다. 그 일을 비발디는 30년 가까이 하면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커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비발디는 이곳 베네치아 고아원에서 30년의 사제
생활을 마치고 오스트리아 황제 카를 6세의 초청
으로 빈으로 갔으나 그가 도착했을 때 황제는
세상을 떠나 만나지도 못했다.
비발디는 그곳에서 극빈의 생활을 하다 숨을
거뒀다고 한다.

골목길에서 넓은 공간이 생겼다.
중앙에 구조물이 눈에 띤다. 수도시설이란다.
먹는 물을 얻기 위해 빗물을 최대한 모아
정수과정을 거쳐 식수로 이용한 시설이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단다.

붕어 모양의 베네치아...
현재 116개의 섬들이 409개의 다리들로 연결되어
있고 원래부터 수상에 지은 집들이 아니다.

동남아의 수상 가옥과는 다르다.

골목길 곳곳에 수도시설 흔적이 남아있다.
건물 외벽의 빗물받이가 집 내부로 들어가면 이를
모아서 정수과정을 거쳐 사용했단다.

건물과 건물을 이은 다리는 섬과 다른 섬을 연결
하는 다리, 즉 다리를 건너면 다른 섬으로 넘어간
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명한 "탄식의 다리"
이 다리는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이어 주는 다리이다.

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가던 죄수들이
한숨을 쉬는 곳이라고 해서 탄식의 다리로 불리는
곳이다. 카사노바가 탈옥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탄식의 다리를 건너 곤돌라를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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