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 수목원을 읽다(하) / 윤승원
<전북 완주군 대아수목원>
꽃들은 피어날 때를 알고 져야할 때를 제대로 지킨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한다.
명예와 부에 집착하지 않고 시들어 사라지는 것에 애달파하지 않으며
타자와 더불어 대동(大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가지면 더 가지려하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만을 고집하며 주변을 돌아보지 아니한다.
한낱 풀과 나무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꽃과 나무들은 우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책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수목원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삶의 고비를 넘어오느라 받은 상처와 아픔들을 치유 받는 것이다.
추위와 강풍을 인내한 꽃들이 피워 올리는 환희의 시간들을 보면서
내 삶의 고단들도 어느 순간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저 풀과 나무처럼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내가 나를 반성하는 때도 바로 이곳 수목원에서이다.
혹, 도연명의 도원기(桃園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여기가 아닐까?
나는 고기잡이가 되어 길을 잃고 여기 수목원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도 가도 온통 꽃으로 덮여있는 화원의 심연.
꽃잎은 푸른 잔디 위에 펄펄 눈처럼 날아 내리고
나는 그만 속세에서 실종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꽃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꽃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이제 꽃과 합일하여 한 몸이 된다.
다산(茶山)은 죽란시사(竹欄詩社)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시를 나누었다고 한다.
조선조 책벌레인 이덕무는 책을 켜켜이 쌓아놓은 자신의 방을 소완정(素玩停)이라 불렀다.
풀벌레며 새들의 죽란시사에 귀를 귀울여본다.
꽃책으로 울타리를 삼은 이곳을 가만히 나의 소완정이라 불러보기도 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券氣)라 했다.
무릇 글씨에서는 향기가 있어야 하고 서책에서는 기(氣)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벌, 나비며 햇살과 바람, 사람까지 찾아들게 하는 꽃들이야말로 자연이 쓴 최고의 금석문이 아닐까?
어느새 해가 떠오른다.
꽃잎 끝에 매달려 있던 이슬 꽃들이 반짝 마지막 문장을 남기며 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생을 살다가는 꽃.
생과 사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저 촌철살인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묘미 때문에
나는 여명의 수목원을 즐겨 찾아오는 것이다.
봄, 수목원은 싱그럽고 향기로운 도서관이다.
저마다 제 몸 속의 붓을 꺼내 혼신의 힘으로 일필휘지하는 꽃과 나무들.
나의 독서는 초록의 묵향에 흠뻑 물이 들었다.
나는 무슨 문장으로 이 봄을 기록할까?
수목원을 걸어 나오는, 오늘은 내 몸이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