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초등학교 수업
[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핀란드의 초등학교 수업
핀란드 헬싱키 실타마키초등학교 과학실 한쪽 구석에서 모형 자동차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6학년 예트로(12)군이 지난 석 달간 만든 '태양 전지 자동차'다. 친구들이 모여들어 "빛이 없으면 어떻게 움직여?" "달리는 방향도 바꿀 수 있어?" 등 질문을 퍼부었다. 신이 난 예트로군은 "빛을 전기에너지로 바꿔 저장해 당장 빛이 없어도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1일 오전 찾아간 이 과학실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한쪽에선 여학생 둘이 고무 찰흙으로 스파게티면을 연결해 탑을 높다랗게 쌓는가 하면, 한 학생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 털모자에 꼬마전구를 달고 있었다.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시끌시끌해 도떼기시장 같았다.
이 수업은 6학년생이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정해 한 학기 동안 도전하는 '과학 도전 프로젝트' 시간이다. 보통 2명이 짝을 짓도록 하지만 혼자 해도 괜찮다. 혼자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학생을 배려한 것이다. 안나마리 야티넨 교장은 "창의성은 아이들이 각자 공부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때 길러진다"고 말했다.
북유럽의 인구 560만 강소국인 핀란드는 '창의'와 '혁신'으로 이름 높다.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점유했던 노키아가 몰락했지만 이후 '앵그리 버드' '클래시 오브 클랜' 등 작은 벤처 기업들이 개발한 모바일 게임이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수도 헬싱키는 매년 기술 기반 벤처 기업이 300~400개씩 탄생하는 '유럽 스타트업(소규모 신생 기업)의 수도'가 됐다. 전문가들은 "학생 개인의 강점을 살려주고,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핀란드 교육 정책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아이들 각자,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핀란드가 지금처럼 '창의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부터다. 이전까지 핀란드 학생들은 여러 국제 학력 비교 평가에서 중위권에 머물렀고, 교육 제도에 특별한 점도 없었다. 그러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았던 핀란드 경제도 함께 무너졌다. 1993년 실업률이 20%에 달했고, 경제 규모는 13% 쪼그라들었다.
핀란드가 내놓은 국가 위기 타개책은 산업 다각화 등 '혁신'이었다. 혁신엔 교육 개혁도 포함됐다. 노키아 등 대기업까지 포함한 교육과정 개편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학교에서 창의성과 문제 해결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 지식 경제가 발전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모두 달라 '비교 불가' 학교 수업들
이후 핀란드 학교에서는 '학교 자율성'과 '개인 맞춤형 학습'이 강조됐다. 교장이 자신의 철학과 지역 여건에 맞게 예산을 짜고 교사를 뽑을 수 있게 했다. 교사에게는 수업과 학생 평가 방식, 진도, 교재 선택 등에 대한 자율성을 전적으로 줬다. 상부 기관이 학교 운영 상황을 살피는 '학교 시찰 제도'와 초등학교 학력 평가 제도는 폐지했다.
이제 핀란드 교실에서는 교사가 설명만 하는 전통적인 수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토론, 게임, 발표 등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교사·학생 간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수업이 대부분이다. 암기나 문제 풀이 숙제, 빈번한 쪽지 시험도 없다. 학교와 교사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학교 간 성적을 비교하거나 순위를 매기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마리안네 후코넨 핀란드 교육 수출 대사는 "궁금한 것을 찾아내고,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이 창의적인 인재"라며 "교사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지식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