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꾸러미

"몰입 훈련으로 창의성 기를 수 있어… 수업시간 절반 이상이 생각 타임"

전승기 2017. 1. 11. 11:53


<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몰입 훈련으로 창의성 기를 수 있어… 수업시간 절반 이상이 생각 타임"


국내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정용빈(38)씨는 회사에서 '문제 해결사'로 통한다. 입사 1년도 안 돼 공장에서 제품 불량이 생기는 원인을 찾아내 해결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제조 분야와 연구소를 거치면서 남들보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 사내평가에서 줄곧 상위권 등급을 받았다. 현재 본인 전공이 아닌 마케팅 부서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정씨는 지금 창의적인 '핵심 인재'로 꼽히지만 10년 전 대학원 때까지만 해도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험실에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면서도 결과는 신통찮았다.

정씨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는 "서울대 대학원 때 지도교수에게 생각에 몰입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정씨의 지도교수는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들을 모임' 멤버인 황농문 재료공학부 교수다.




◇교수는 묻고, 학생은 생각한다

"여러분, 이 문제는 재료 분야의 거장 존 칸 박사가 고민했던 문제인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난 11월 28일 서울대 33동 327호 강의실에서 열린 '재료 상변태(相變態)' 수업. 황농문 교수의 말에 학생 40명이 있는 교실이 정적에 잠겼다. 5분 후 학생 한두 명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황 교수는 "왜 그렇게 생각했지?" "그 부분은 모순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학생들은 다시 생각에 빠졌다. 이날 75분 수업에서 황 교수는 40여개 질문을 쏟아냈고, 학생들은 40여분간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황 교수 강의는 교수가 이론이나 공식에 대해 설명하고 학생은 필기하는 '지식 전달식 강의'가 아니다. 2008년부터 공식과 이론을 미리 알려주기 전에 도출 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생각해보게 하는 '몰입(沒入)' 교육을 하고 있다.

예컨대 황 교수는 지난 학기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빨래가 언제 잘 마르느냐"고 질문했다. 학생들은 "건조해야 잘 마른다"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했다. 황 교수는 더 나아가 "건조한 곳에서 각각 1㎝, 10m 씩 떨어진 빨래 중에 어느 것이 잘 마를까?"라고 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건조한 곳과 거리가 가깝고 습도 차이가 많이 날수록 빨래가 잘 마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황 교수는 "이 법칙은 거리가 가깝고 농도 차이가 클수록 확산이 잘 일어난다는 '픽의 확산 법칙'과 원리가 같다"며 "'픽의 확산 법칙'을 그냥 알려주는 대신 학생들이 픽처럼 생각해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몰입했더니 난제 풀리더라

황 교수처럼 수업 시간의 절반 이상을 질문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면 진도를 빨리 나가기가 힘들다. 일부 학생은 새로운 수업 방식에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황 교수는 "이제는 인터넷에 다 나오는 지식을 알려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도 "스스로 생각해 문제를 풀어보는 습관을 갖게 됐고, 내용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조욱현(21·재료공학부 3년)씨는 "처음엔 배우지도 않은 걸 생각하는 게 익숙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수업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앞으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문제를 해결할 때는 '창조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지금 학교 교육과정은 창의성과 동떨어져 있다"며 "창의성은 깊이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황농문 교수의 '몰입교육'>